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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현장스케치] [최재천 북잼토크] “500년쯤 더 살아서 인간 진화실험 보고 싶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12.14 06:35 조회 1,755

“죽기 전에 꼭 쓰고 싶은 책이 한 권 있습니다. 제목은 생명, 영어로 ‘Life’로 정해놨어요.”

진화생물학자 최재천 국립생태원 원장이 현재 쓰고 있는 인생 역작을 살짝 공개했다. 12월 1일 저녁, 서울 한남동 북파크 카오스홀에서 열린 인터파크도서 ‘북잼토크’에서다. 북파크는 과학‧지식‧나눔을 모토로 설립된 카오스재단이 과학과 다른 학문의 교류를 꾀하기 위해 만든 복합문화공간이다. ‘인간의 진화와 미래’를 주제로 열린 이번 북잼토크는 북파크 공간에 더없이 안성맞춤인 특강이었다.

최재천 원장은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개미제국의 발견> <통섭의 식탁> <생각의 탐험> 등 베스트셀러 저자로도 유명하다. 강연 시작 전부터 카오스홀은 관객들로 북적였고, 강연 시작 시간인 7시 30분엔 300석의 객석이 가득 찼다.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 속에 무대에 오른 최재천 원장은 인문학에 대한 언급으로 강의를 시작했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비슷한 것 같아요.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왜 태어났을까. 생명이란 무엇인가.’ 그런 걸 묻는 분야가 자연과학입니다. 오늘은 생물학자로서 인간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고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흘러갈 것인지를 여러분과 나눠보겠습니다.”

 

자연과학이 인간 삶의 근원을 파고드는 학문임을 짚은 그는 자신을 “자연의 진화를 연구하는 사람”으로 소개하면서 “자연의 진화를 연구한다는 건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늘 뒤돌아보면서 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다시 미래학과 연결된다. 최재천 원장은 ‘10여 년 전 처음 미래학자들이 그에게 공동연구를 제안할 때는 어색했는데 차츰 미래 전망이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분야로 느껴졌다’고 전했다.


“미래라는 게 과거와 아무 상관없이 어느 날 갑자기 ‘펑’ 하고 나타나는 게 아니잖아요. 과거가 현재라는 찰나를 거쳐 미래로 흘러가는 겁니다. 그래서 미래는 상당 부분 과거의 관성으로 나타나는 걸 테니 과거를 잘 이해하면 미래가 어느 정도 보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과거를 잘 분석하는 사람이 오히려 미래를 잘 예측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 생각했습니다.”


곤충에서 시작해 까치, 긴팔원숭이, 돌고래까지 점점 덩치 큰 걸 연구하다가 이제 미래까지 내다보고 있는 최재천 원장이 “이런 책을 꼭 쓰고 싶다는 꿈을 안고 산다”면서 궁극에 글로 남기고 싶은 주제를 밝혔다. 바로 ‘생명’이었다. 생물학자답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뻔한 얘기가 나오지 않을까 우려도 됐다. 최재천 원장은 걱정 말라는 듯 ‘이미 8년 전에 착수한 이 책을 다 쓰면 1600쪽쯤은 되지 않을까 싶다’면서 영상막에 비슷한 두께의 사전 사진을 보여줬다. 어마어마했다.

 

“과거는 현재란 찰나를 거쳐 미래로 흘러... 과거 이해하면 미래 보인다”

현재 그가 있는 곳은 서울에서 3시간여 거리에 있는 충남 서천 국립생태원이다. 신생 기관의 초대원장으로 임명돼 할 일이 많다. 최재천 원장은 국립생태원이 생기게 된 과정도 들려줬다.


“서천군민들이 ‘강 건너 군산은 새만금 방조제를 만들어서 엄청나게 투자를 해주면서 왜 우리는 갯벌을 메워서 공장 안 짓느냐. 우리도 해달라.’라고 데모도 하고 그랬어요. 그런데 더 이상 갯벌을 건드리지 말자고, 환경을 보전하면서도 경제적 이득을 얻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실험해보라고 해서 만든 게 국립생태원입니다.”


그런 사연이 있어서 환경부에서도 국립생태원 개장 첫해인 2014년 30만 명 정도를 유치해주길 주문했다고 한다. 최재천 원장이 “그런데 목표를 300% 이상 달성해 100만 명이 다녀갔다”고 말하자 청중은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최재천 원장은 “2015년에도 거의 100만 명을 했습니다”라는 말로 더 큰 박수를 유도했다.


문제는 올해다. 전문용어로 ‘개장발’이 끝나서, 한 달밖에 안 남은 올해는 잘해야 90만 명이 될 것 같다고 걱정했다. 하지만 최재천 원장은 ‘아직 올해도 100만 명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않았다’면서 “여기 오신 분들이 이번 달 안에 다섯 번씩 오시면 된다. 가족뿐 아니라 사돈에 팔촌, 초등학교 동창들까지 다 끌고 와야 한다”고 부탁했다.

 

최재천 원장은 관람객 유치를 위한 야심작도 소개했다. 바로 ‘개미과학기지로 떠나는 개미세계탐험전’이다. ‘개미 박사’로도 불리는 그는 “우리 배달민족과 개미 사이에 뭔가 있다는 심증을 버릴 수가 없다”고 말문을 텄다. 우리 땅에서 웬만한 인간 덕목은 용서받지만 게으른 건 용서받지 못한다는 거다. 개미가 상징하는 바도 근면이다.


개미와 인간의 공통점은 또 있다. 농사를 지을 줄 안다는 것. 게다가 인간은 겨우 20만 년 전부터 농사를 지은 농사 초년생인 반면, 개미는 무려 6500년 동안 경작을 해온 베테랑 농부다. 개미세계탐험전에서 바로 그 베테랑 농사꾼을 만날 수 있다. 최재천 원장이 잎꾼개미라고 이름 지은 개미로, 나무를 해오는 나무꾼처럼 잎을 해와 잘게 썰어서 버섯 농사를 짓는, 개미세계의 스타개미다.


그와 함께 개미책의 표지모델로 늘 등장하는 베짜기 개미도 호주에서 데려왔단다. 보통 개미들이 땅속에 집을 짓고 사는 데 반해 이들은 나뭇잎에 살고 있어서 초록빛을 띤다. 개미들이 서로 허리를 물고 문 채 애벌레가 고치를 풀 때 분비하는 물질로 베를 짠다.


최재천 원장은 저서 <개미제국의 탄생>에서 ‘개미는 인간 이외 전쟁을 일으켜 대량살상을 하는 한편 고도의 분업체계와 집단성과 함께 정교한 정신문화를 갖고 있는 유일한 동물’이라고 밝혔다. 개미세계탐험전에서는 이들 개미들이 농사를 짓고 베를 짜는 작업 과정을 직접 볼 수 있다. 올해 4월부터 시작된 이 전시는 내년 2월 말까지 이어진다.

 

“살기 위해 자연 훼손하는 인간... 가족을 살해하고 있는 것”

이제 최재천 원장이 생애 역작으로 생각하고 있는 <생명>(가제) 이야기로 넘어가자. 그는 생명을 몇 가지 특성으로 설명했다. 제일 처음으로 꼽은 속성은 “생명은 언젠가 끝이 난다”는 생명의 한계성이다. 그는 자신이 발견하고서도 “오랫동안 이걸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모두가 안 죽으면 다 죽는다”는 말로 진실을 직시할 것을 당부했다.


“지금 이 순간 누군가가 늙지 않는 법을 발견했다면 전 세계인이 모두 모여서 합의를 봐야 합니다. 절대로 자식을 낳지 않고 지금 존재하는 우리끼리만 영원히 살겠다고. 그런데 인간 본능 때문에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을 겁니다.”


죽는다고 하니 암울한가? 걱정하지 마시라. 생명은 한계가 있지만 역설적으로 한계가 없기도 하다. DNA 복제를 통해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남기고 있다. 생명의 연속성이다. 최 원장은 “제 할아버지의 유전자가 제 몸 속에 남아 있는 것이고 제가 죽으면 제 아들의 몸속에 유전자가 살아 있을 거”라고 이를 해설했다.

 
생명은 또한 다양성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최 원장은 “태초에 하나의 DNA로부터 나왔는데 생명체가 어떻게 이렇게 기가 막히게 다양하게 진화를 했는지 놀랍다”고 했다. 또 “다양한 생물들을 거슬러 올라가면 하나의 큰 가족이다”라고 강조하면서 아래와 같은 질문이 가능하다고 했다.

 
“지금 인간이 우리가 살기 위해 자연을 너무도 많이 훼손하고 있는데 이는 가족을 살해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에게 무슨 권리가 있기에 침팬지가 사는 곳과 잠자리들이 살 수 있는 서식처를 다 망가뜨리느냐. 게다가 연세로 보면 우리가 제일 어릴 거예요. 우리는 기껏해야 20만 년 전에 태어났지만 잠자리는 공룡하고 같이 살았어요. 무려 7000만~8000만 년 전부터 살던 곤충이에요. 우리의 대조상님이세요. 그런데 우리가 잡아서 날개 뜯어보고 그런 짓을 하는 거예요. 우리에게 누가 이런 권한을 줬을까요?”

 

질문이 무겁다. 최 원장은 답을 찾을 수 있는 두 가지 힌트를 줬다. 하나는 다윈이다. 서양의 오랜 전통은 인간과 인간 이외의 다른 모든 생물들을 분리시킨 채 인간만 독특하다는 사상이었는데 다윈이 이 생각을 깨뜨렸다는 거다. 모든 생물체는 태초에 하나의 DNA로부터 나왔다는 생명의 일원성을 밝힘으로써. 한편 고생물학자인 스티븐 제이 굴드가 쓴 <생명,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원제 Wonderful Life)의 한 대목을 소개하기도 했다.


“태초부터 생명의 드라마를 비디오로 찍었다고 칩시다. 시사회를 하는데 영 마음에 안 들어서 다시 찍자고 하면 새로 찍는 영화에 인간이 등장할까. 스티븐 제이 굴드는 그렇게 묻고 스스로 답합니다. 인간이 등장할 확률은 0이다. 왜냐하면 생명이라는 게 처음부터 인간을 등장시키기 위해 각본이 짜여 있던 게 아니니까요. DNA가 복제하는 과정에서 우연에 우연에 우연이 겹쳐서 포유류도 나오고 그 포유류 중 영장류도 나오고 그 영장류 중 어느 한 가지에서 인간이라는 동물이 태어난 거니까요.”


어쩌다보니 생겨난 생명의 우연성을 되새길 때 우리는 겸허해지게 된다. 이화여대 에코학부 석좌교수이기도 한 최재천 원장은 대학 강의처럼 생명의 속성들을 꺼내놓았지만 그 사이사이 인간 스스로를 돌아보는 질문도 놓치지 않았다.

 
<생명> 책에서 다루고자 하는 이야기들을 간략하게 풀어낸 최 원장은 그가 유행시킨 개념에 빗대 전형적인 ‘통섭’형 인재로서의 다윈의 삶까지 조명했다. 그러고 나서 500년쯤 더 살고 싶다는 뚱딴지같은 말로 강연을 끝냈다. 속뜻을 들어보니 뚱딴지가 아닌 진화생물학자다운 말이었다.

 
“지금까지 인류는 지역에 따라 다른 인종들이 살았습니다. 여기 사는 분들은 여기 사는 분들끼리만 결혼해서 자식을 낳은 거죠. 지금은 엄청나게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전 세계가 이동하면서 결혼합니다. 엄청난 스케일의 자발적인 진화실험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 한 500년쯤 더 살아서 인간이 어떤 식으로 변화할지 보고 싶은데 그렇게는 안 되겠죠?”

 

“과학은 인간이 하는 행위 중 가장 민주적인 행위”

묵직했던 강의답게 이어진 청중들의 질문도 무게가 있었다. 충남 당진에서 3시간 걸려서 왔다는 한 여성은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해 이제 4살 2살인 아이들을 어떤 방향으로 키워야 할까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최 원장은 “우리가 알파고와의 경기를 앞마당에서 봐서 충격이 크겠지만 개인적으로는 AI에 대한 걱정이 지나치다는 생각”이라며 답변을 이어갔다.


“AI가 일을 많이 하는 시대가 돼도 직장이 사라지는 거지. 일이 사라지는 건 아닐 거예요. 새로운 일은 또 만들어내겠죠. 그리고 AI에게 일 시켜놓고 노는 것도 일로 만들면 되잖아요. 앞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의 직장은 없을 겁니다. 그래서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두루두루 공부해놓는 사람이 굉장히 유리합니다.”


아이들을 통섭형 인재로 키워내자는 말이다. 한 청중은 최재천 원장이 쓴 책의 한 부분을 언급하면서 진화생물학과 신학의 관계를 날카롭게 묻기도 했다. 최재천 원장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아내와 결혼하면서 어떻게든 교회는 같이 가겠다고 약속을 해서 20여 년간 “독실한 운전기사로 교회에 다니고 있다”며 겸연쩍어 했다. 그러면서 “종교도 인간이라는 동물이 만들어낸 굉장한 적응현상이자 지극히 자연스러운 활동 중 하나로 적대적으로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종교와 과학이 대립할 이유가 없다는 게다.


최재천 원장은 나아가 “우리 사회는 너무 많은 일에 쉽게 흥분하는 것 같다”며 “좀 열고 허심탄회하게 대화하고 조금씩 풀어가다 보면 새로운 길을 분명히 찾을 거고 그것이 과학의 힘”이라며 사회문제를 과학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과학은 그 어느 것도 거부하지 않습니다. 과학은 인간이 하는 행위 중 가장 민주적인 행위입니다. 누가 아무리 우겨도, 그래서 그렇게 해놔도 잘못된 거면 조금 있으면 무너집니다. 반드시 많은 사람들이 그걸 검증할 거거든요. 그래서 제가 과학의 대중화를 하지 말고 대중의 과학화를 하자는 겁니다. 모두가 어느 정도 과학마인드를 갖추게 되면 저절로 마음이 열릴 거라고 생각합니다.”


최재천 원장은 청중들의 질문에 답하면서 첫 대목을 계속 “질문하면서 스스로 답을 찾으신 것 같다”고 말했다. 그가 늘 이야기하는 “알면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스스로 질문하면서 스스로 답 찾기’가 불확실한 미래에 맞선 진화생물학적 대처방법임이 2시간 가까이 이어진 강연의 결론이었다.

 

사진 : 남경호(스튜디오2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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