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변내용
질문의 바탕이 되는 실용주의적 관점은 다음과 같이 바꿔 말해볼 수 있습니다. “과학은 기술의 발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것입니다. 물론 특정한 과학 지식이 기술 발전에 직접적으로 기여한 바도 있습니다. 반도체 칩이나 GPS는 각각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 없이는 절대 만들어질 수 없는 제품이지요.
그러나 역사를 들여다보면 과학의 진보를 이끈 것은 기술 발전만을 추구하려는 노력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과학의 목적은 인류가 지닌 지식의 지평을 넓히려는 과학적 진리 탐구 활동 자체에 있었으며, 새로운 기술은 그 부산물로서 주어졌다고 보는 편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기술이 먼저 발달한 후에 그를 뒷받침하는 과학적인 이론이 등장한 경우도 많고요. (현대에 와서는 과학과 기술이 더 복잡하게 상호작용합니다)
생물종은 어디에서 기원하는 것인지, 우주는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물질은 어떻게 변환되는지, 이러한 질문은 일상적인 경험만으로는 대답하기 어려우며 과학의 출현 이전에는 종교나 마술이 ‘권위의 힘’을 빌어 설명하던 영역입니다. 이제는 후자의 설명 중 많은 부분이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드러났지요. 과학 이론은 우리가 “세계관”을 그리는 데에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코페르니쿠스와 케플러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아직 우주의 중심에서 살고있다고 여기며, 지구의 나이는 수천 년 밖에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여기에 대해 모른다고 해도 일상생활에 아무런 지장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용적이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지식이 불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우주의 기원에 대한 지식이 미래에 직접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기회가 올지도 모르지만, 그와는 별도로 우리가 사는 세계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